친구들로부터
FRIENDSGIVING
선아_RE: 2022

가끔은 시리얼도 괜찮아.

주리.

너도 알지, 나는 언제나 뭔가를 꾸리고 싶어한다는 걸. 가까이는 공부모임을 꾸리고 싶어 하고, 번역하는 공동체도 꾸리고 싶어 하고. 흩어져 있던 나의 바깥이 그렇게 내 곁에서 꾸려졌으면 싶을 때가 언제나 있었고, 있고, 있을 거야. 왜 그렇게 되었을까? 어쨌거나 요새는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그런 시도를 할 때마다 너희를 찾게 되네. 많은 부분 겹쳐져 있게 되었잖아? 나의 안이기도 하고 밖이기도 한 친구들이 되는 바람에.

나의 밖에 대해 쓰려고 보니 결국은 경계에 대해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하지만 그 얘기를 하려면 결국 내가 어떻게 살았는가를 얘기해야 할 것 같아. 그런 건 어느 날 갑자기 여기서부터 여기까지입니다, 쓰윽 반듯하게 그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또 엄마 얘기를 해야 할 수도 있어. 아니, 해야 하겠지. (한숨)

나는 결혼하기 전까지 엄마랑 동생이랑 셋이 살았어. 번듯한 집을 갖기가 힘들었고 짐은 많고 하니까 셋이서 늘 한 방을 썼었지. 학생이라 책상은 있어야겠는데 그런 것도 없었어. 내 책상이라는 것도 대학생 때나 처음 갖게 된 것 같아. 그렇게 나는 늘 애매한 공간에 나를 두고는 어디가 안인지 밖인지도 모르는 채로, 내게 무언가 들이닥치면 나인가보다, 내게서 무언가 떠나가면 내가 아닌가보다, 그렇게 살았던 것 같아. 늘 복작거리는데 늘 허전하고, 늘 갈망하지만 늘 넘쳐흐르는 채로 살았어. 경계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었달까. 그런데 그러다보니 치명적인 문제가 발견됐어. 내가 내 인생을 어떻게 꾸릴 것인가 스스로 고민해야 할 시간에 엄마가 내 안에 있는 것 같은 거야. 그게 자각된 이래로 나는 필사적으로 엄마를 내 안에서 몰아내려고 했어. 그 막막한 투쟁에 대해서는 쓰지 않을게.

예를 들어, 나의 결혼은 완벽한 경계긋기였어. 여기서부터는 넘어오지 마시오. 그런데 너도 알다시피 나의 모든 기획들은 완벽하게 실패했어. 엄마가 여전히 내 안에서 이런저런 소리를 낸다는 게 증거고, 내가 가끔 너희에게 털어놓는 이야기들이 증거야.

그런데 나에겐 ㅁㅁ이가 있잖아. 거기서부터 나의 경계에 대한 사념이 다시 시작돼. 나의 어디까지가 나의 안이고, ㅁㅁ이의 어디까지가 ㅁㅁ이의 안이지? ㅁㅁ이는 독립적인 아이라 많은 경우 자신의 경계를 잘 알고 있어/있다고 생각해(이 글을 쓰면서 원래는 ㅁㅁ이의 실명을 썼거든. 근데 지나가며 흘끗 본 ㅁㅁ이가 자기 이름을 쓸 거면 가명을 써 달라고 했어. 그래서 급히 ㅁㅁ이로 수정한다.) 그리고 나는 그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 생각하면서도 종종 넘나들지. 그러면서도 그 경계를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때문에 뇌에 힘주며 참기도 하고, ㅁㅁ이의 그 선을 넘으려는 사람들을 보면 곧바로 날을 세우기도 하고. 그런데 타인의 경계를 ‘내가’ 지켜준다는 발상부터 어떤지 좀 선을 넘은 것 같진 않아?

그런데 주리야. 몸이 피곤하면 이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야. 그리고 내 선택을 실패라고 말하는 것도 싫고 다 지겨워지는 때가 있어. 나도 마음이 편했으면 하니까. 그래서 조금씩 조금씩 내려놓고 다만 조금 더 물처럼 살기를 꿈꿔. 엄마 탓을 하고 싶지도 않고, 가난 탓을 하고 싶지도 않아. 아마 그래서 내가 수영을 좋아하나봐. 온갖 지저분한 마음을 끌어안고 물에 뛰어들면 숨 쉬는 거 하나만 할 수 있게 되니까 경계가 없는 척 할 수 있어. 수영 하다가 물 먹어본 적 있니? 물 제대로 먹으면 정말 죽는구나, 싶을 때가 있거든. 코가 매운 수준에서 끝나지 않아. 정말로 숨이 멎는다는 게 이런거구나, 싶은 상태로 집중해서 숨길을 찾아야 해. 그런 걸 몇 번 경험하고 나면 내가 물이요, 물이 나요, 싶게 익숙해지는 때가 오지. 나는 그래서 수영을 좋아해. 아무 것도 중요해지지 않는 경험. 내가 숨쉬는 것만 필요한 상태. 경계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 싶은 마음. 근데 그 수영도 종종 잘 안 될 때가 있어. 몸이 너무 무겁고 이상하게 물이 나랑 안 맞을 때. 그럴 땐 요가를 가면 돼. (웃음)

누가 보면 도망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주리야. 경계가 있다는 건, 내 안과 밖이 그렇게 선명하다는 건 언젠가는 막다른 길에 다다를 수도 있다는 거니까, 도망갈 길을 많이 만들어 둬. 안이든 밖이든 상관없는 공간을 여럿 만들어 두는 거야. 그건 친구일 수도 있고, 나처럼 운동일 수도 있겠고, 어쩌다 꽂혀버린 덕질일 수도 있고, 어제 처음 만났는데 갑자기 마음을 확 열어버리고 싶은 낯선 동물일 수도 있고, 오늘 처음 만들어보는 버섯전골일 수도 있어.

일단은 밥을 잘 먹으렴. 가끔은 시리얼도 괜찮은데, 웬만하면 더 든든한 걸 먹어. 알겠지? 글 마치고 싶은데 이렇게 시작도 끝도 아닌 것처럼 마쳐도 되겠지? 그래야 또 얘기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