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로부터
FRIENDSGIVING
장래이_ RE: 2021

주리! 어제 공유해준 글 너무너무 잘 읽었어!
아침밥 먹으면서 한 번 쭉 읽고, 너무 좋아서 밥그릇을 적셔놓고 앉아서 한 번 더 읽었어.
다 읽고 나서 어떻게 피드백을 해야 하는걸까 고민하다보니 시간이 어영부영 가 버렸네.
굉장히 편지를 쓰고싶도록 사람을 꼬드기는, 따뜻하고 다정한 글들이었어요:)
나도 motherhood에 대해 무언가 글을 적어서 화답할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은데, 지난 이틀간 쉽사리 어떤 실마리도 잡히지 않더라고. 그만큼 ‘어머니’라는 주제가 내 안에서 뒤죽박죽 정돈되지 않은채로 방치되어있었구나, 이미 어느정도 정리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자신을 단단히 속이고 있었구나 라는걸 깨닫는 시간이었어.

많은 젊은 딸들에게 ‘어머니’는 애틋하고도 아픈 주제일 것 같아.
졸음에 겨운 목소리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노래를 들려주었던 사람. 하지만 표정 뒤로 무너져내리는 건물을 숨기고 있었던 사람.

최근에 결혼을 한 친구와 둘이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
친구는 “아무래도 쾌보다는 고가 더 많은 인생으로 새 생명을 끌어들이는 것이 윤리적인가? 더군다나 지구 환경마저 망해가고 있는 이 상황에서” 라는 물음으로 고민이었고, 나는 출산 혹은 양육(둘은 분명 별개의 문제니까)이 요하는 어마어마한 에너지와 시간, 그 일의 무자비함과 경이에 대해 길게 이야기했어.
평소에도 동식물 다큐를 좋아하는 우리는 유충에서 나방으로 변태하면 입이 없어져 일주일 안에 교미와 재생산을 끝마쳐야 하는 아틀라스 나방, “나의 문어 선생님”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알을 낳은 뒤에는 기력이 쇠해서 다른 생물들에게 뜯어먹히는 문어, 단 하룻동안 짝짓기를 하고 강물 위를 떠내려가는 하루살이, 이런 종족들을 차례로 거론하면서 점점 더 말이 없어졌지.
정말, 대단하다. 그리고 모르겠다. 놀랍다.
이런 말들이 이야기 도중에 계속해서 드문드문 나왔어.

주리야, 너는 여자들이 왜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다고 생각해?
결정의 여지가 없었던 사람들이 이전 세대에는 훨씬 많았던 것 같지만(그리고 출산과 양육을 강제하는 사회문화권별 시대별 내러티브와 역동은 정말 커다란 별개의 주제이지만), 적어도 결정할 수 있는 사람들은, 왜 그런 결정을 하는 걸까?

생각할 수록 답은 참 많을 것 같기도 하고, 아예 없을 것 같기도 해. “왜 살지?”같은 질문과 거의 동격으로 말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무시무시한 질문을 넘어서서 아이를 낳거나 기르게 된 사람들은, 모두 똑같이 ‘어머니’라는 이름표를 달게 된 여인들은, 어쩌면 하나같이 무너지는 얼굴을 하고서 다정한 노래들을 부르게 되는 건지.

있잖아. 비밀 하나 알려줄까?
나는 어릴 적에 엄마가 노래하는 소리가 되게 싫었어ㅋㅋ.
울 엄마 노래 잘 못 부르시거든.
엄마가 부엌에서 일을 하며 혼자 노래를 흥얼거리실 때가 있었는데, 전혀 훈련되지 않은 성대로 음정도 박자도 틀려가며 노래를 부르시면 혼자서 손발이 오그라들곤 했어. 나 음감이 예민한 편이었거든ㅋㅋ.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단지 엄마가 부르는 노래가 음이탈 박자이탈이 잦아서 싫었다기보다는, 엄마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익숙하기 그지 없는 목소리가 낯설게 뒤집어졌던 탓이 가장 컸던 것 같아.
거의 내 몸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음성이, 갑자기 무법자처럼 이리저리 흐트러지고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는 감각이 무척이나 위태로웠어. 그래서 싫었던 것 같아.

그랬던 엄마가 판데믹이 터지기 직전 친구 아주머니 몇 명과 ‘음치탈출 노래교실’에 두어 달 다니셨거든? 덕분에 엄마는 부엌에서 다시 노래를 부르시기 시작했고.
그 때는, 어릴 적에 혼자서 파들파들 떨며 싫어했던 기억이 괜히 미안해서 열심히 들어드렸어.
음을 잡지 못하시면 몇 번이나 다시 잡아드리고, 전주의 음을 기억하는 요령도 알려드리고.
그 때도 엄마는 누군가의  평가 따위 아랑곳않고 당당하게 좋아하는 노래들을 부르시더라고. 
“이 노래는 가사가 좋다” “이 노래는 대학교 시절에 좋아하던 노래다” 이런 코멘트들도 덤으로 붙여가면서.
성인이 되고 듣는 엄마의 노랫소리는 참, 평범하더라.
그래서 좋았어.
엄마를 단지 ‘내 엄마’가 아니라, 발성은 많이 갈고닦아야 하지만 음감은 의외로 친구들 중에서 제일 좋은, 문학적이고 서정적인 가사를 좋아하는, 남들 앞에서 흥얼거리는 것에 부끄러움이 없는, 꽤 귀여운 구석이 많은 J여사로 받아들일 수 있어서. 그래서 참 좋더라.

주리 어머니는 노래를 자주 부르셨어?
주리는 어머니의 노랫소리를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들어?

갑자기 찾아온 한파와 건조에 놀라, 자취방에 냄비째로 물을 끓이며 어머니 목소리를 회고하고 있으니 따뜻하고 촉촉해서 좋다.

주리도 따뜻한 밤 보내고 있길.
그리고 앞으로도 멋진 편지들을 잔뜩 주고받을수 있길!

이 다정한 편지 행렬에 나를 초대해주어서 고마워:)

너의 친구 래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