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로부터
FRIENDSGIVING
보영_RE:2024

주리에게

주리야, 어느새 겨울이야.

그러고 보니 네게 어떤 계절을 좋아하는지 물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 추위가 힘에 부치지만 그래도 겨울을 좋아할 것 같은데, 정답이야?

어제는 좋아하는 분들과 술을 아주 많이 마셨어. 술에 많이 취한 날이면 사람들을 우리 집에 재우고 싶어 해. 그 버릇이 또 발동되어 두 분을 집으로 데리고 왔어. 손님이 올 줄 모르고 나갔던 터라 집은 조금 엉망이었고, 식탁 위에 레슬리 제이미슨의 리커버링이 놓여 있어서 조금 머쓱했다.

요즘 술을 많이 마시면, 아니 많이 마시지 않아도 기억이 잘 안 나. 원래도 기억력이 나쁜 편이라 그다지 문제 삼고 있진 않지만. 얼마나 많은 허튼 말을 했을까, 그런 생각으로 술 마신 다음 날은 조금 점잖은 자세로 지내게 돼. 반성하듯이.

어제 그분들과 날씨 이야기를 하다 좋아하는 계절을 나누게 됐어. 말도 안 되게 뜨거워진 날씨에 대한 우려를 잠시 옆에 두고 이야기하자면 나는 여름을 정말 좋아해. 여름밤의 들뜸, 한낮의 따가움 모두. 왜 여름을 좋아하냐는 되물음에 ‘여름엔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요.’라는 대답이 흘러나왔어. 나는 그런 들뜸이 없는 겨울을 어려워했던 것 같아.

요즘은 무언가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관찰하고, 알아가고, 사랑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 조용히 같은 자리에서 반복되는 일상을 사랑으로 지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번 여름에 잠시 사랑이 있었는데, 무엇을 사랑했던 건지는 잘 모르겠어. 겨울인데 이제. 아직 모르겠다. 사랑이 아주 많이 나오는 책을 한국어로 옮긴 것도 내가 사랑을 조금도 몰라서, 그걸 모른다는 게 언제나 나에게 가장 큰 부끄러움이어서일 거야. 그럼에도 내게 그 책을 안겨준 네가 부지런히 사랑을 알려주고 있는 걸 테고.

고마워 주리야.

우리가 만날 봄을 기다리고 있어.

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