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로부터
FRIENDSGIVING
balm_RE: 2021

주리샘, 

어제 피곤해서 잘 거라고 했는데, 결국은 다 읽고 잤어요. 그리고 저도 엄마 생각, 엄마의 엄마 생각 한참 끄적이다 잠들었어요. 

나의 엄마는 시골 국민학교 양호 선생님 그러니까 초등학교 보건교사였어요. 오늘은 무슨 일을 했냐고 물었더니 아프다고 찾아온 아이 한숨 자고 가게 했다고 하셨던 게 기억나요. 관심을 받고 싶어 찾아오는 아이들이 많았다면서요. 그리고 엄마는 살에 박힌 나무 가시를 잘 뽑았어요. 오래된 나무 마루 위를 달리다 발바닥에 가시가 박혀 양호실에 온 아이들이 그렇게 많았대요. 아이들을 침대에 눕혀 약손을 해주거나, 새까매진 양말 한쪽을 벗겨 고 작은 발에 박힌 가시를 뽑아낸 뒤 갈색 약을 발라주는 엄마의 일이 저는 참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하지만 엄마는 그런 순간보다 맘에 들지 않는 순간들이 더 많았다고 했어요. 시도 때도 없이 다른 선생님들이 양호실에 들러 잡담을 하거나 잡무를 주고 갔다면서요. 다른 사람들에게 엄마가 양호 선생님이라고 하면 모두들 얼마나 좋은 여자 직업이냐며 부러워했는데  엄마는 제게 그 일을 추천하지 않았어요. 8-90년대 여성 비교과 교사의 애환을, 그 시절 엄마의 심정을 이제 조금은,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예전에 샘에게 말했던 적이 있는데, 저의 눈물 버튼 일호는 외할머니예요. 그래서 이 글들을 읽으며 또 많이 울었어요. 전화드리면 귀가 안 들려 못 알아듣겠다면서도 전화해 줘서 고맙다고 하시는 할머니를 생각하면서요. 아, 어린 시절을 할머니와 함께 보낸 손녀들이 연대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다들 주리님과 피비님 같으려나요.

까맣고 하얀 바둑돌 한 알 한 알과 할머니 도서관의 책들을 기다릴게요. 저도 늘 하고 있고, 하고 싶었던 엄마에 대한 생각, 엄마의 엄마에 대한 생각을 해보려 해요. 이사벨 아옌데의 영혼의 집을 읽었을 때, 내 위 4대 여성들의 삶을 모아도 분명 한 편의 작품일 거란 생각을 했었어요. 우리 모두가 우리 엄마의 생에 대해, 단지 엄마로서가 아니라 나와 같은 딸, 여자 사람으로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어요. 엄마와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줘서, 글을 써줘서 고마워요.


베개가 축축해진 할머니 귀신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