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리에게,
언니, 내가 담배 왜 피게 됐는지 얘기해준 적 있었나?
그날도 엄마랑 거하게 한바탕 한 날이었어. 엄마는 내 오른쪽 옆자리에 앉아있었고 나는 여느 때처럼 엄마가 가장 화날 만한 말을 고르고 골라 날카롭게 벼르고 있었지. 엄마가 내 뺨을 때렸어. 하필이면 그 날은 재수가 별로였나봐. 고막이 찢어졌지 뭐야.
엄마는 놀라고 걱정되는 것 같았어. 안타깝게도 엄마는 그걸 내색할 만큼 용감한 사람은 아니었지. 나도 내가 상처받았다는 걸 내색할 만큼 용감한 사람은 못 돼. 우리는 평소처럼 얼마간 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 며칠 동안 서로를 적극적으로 무시하다가, 다시 서먹하고 지긋지긋한 동거인 사이로 돌아갔어.
내 기억으로는 아마 그 날이었을걸? 엄마가 알았다간 놀라 까무러칠 만한 비밀을 만들고 싶어진 게. 그게 내 몸에 나쁜 일이라는 게 더 좋았어. 나만 아는 은밀한 복수였던 셈이지. (근데 호기심이랑 간지 때문이 아니었다고는 말하지 않을게)
엄마가 알지 못하는 데서 엄마에 대해 말하는 건 약간 비겁한 일처럼 느껴져. 나는 그 비겁한 일이 좋아.
예전엔 엄마가 나에 대해서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게 화가 났어. 한때는 그게 우스웠던 때가 있었고. 지금은 다소 안심이 돼.
나는 요즘도 담배를 필 때마다 가끔 엄마를 생각해.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덜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 6년 차 흡연자인 나한테 이제 시작이 어땠는지 얘기하는 게 그닥 의미있게 느껴지진 않아. 담배는 어쨌건 습관이니까. 내가 아주 좋아하는.
있잖아, 내가 건강 염려증이라는 거 알지? 나는 내가 언젠가는 폐암에 걸려 죽을까봐 무서워. 새해가 될 때마다 내가 몇 년 동안 담배를 폈는지 세어보곤 해. 그걸 걱정하면서 못 끊는 게 가오가 안 산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나는 내가 언젠가는 엄마를 용서하게 되는 날이 올까봐 무서워.
죽어도 엄마귀신은 못 될, 막심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