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주리님이 원고의 주제에 대한 얘기를 꺼냈을 때만 해도 할 얘기가 많겠다고 생각했다. 순간적으로 약간의 흥분이 일었다. 자기만의 밖에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지, 어떤 형태를 그리고 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왠지 단번에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왠지 알 것 같은 기분으로 글을 쓸 수는 없었다. 마감이 가까워지고 노트북을 열어 하얀 빈 페이지를 마주하면 커서가 깜빡깜빡. 그다음 날도 또 깜빡깜빡. 방 안은 적막했지만 정확한 박자감의 메트로놈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결국 노트북을 덮었다. 빈 페이지가 눈앞에 없었지만 정신을 얼리는 겨울 아침, 지하철을 타면서도 버스를 타면서도 보드라운 이불에 누웠을 때도 물음표가 계속되었다. 긴 시간이라고 할 수 없지만 머리가 꽤 지긋이 아파왔다. 자기만의 안을 알고 있으니 자기만의 밖도 선명히 보일 거라는 착각이었나? 그렇다면 자기만의 안은 무엇이 있던가? 나는 어떤 경계에 서 있나?
( ? ) ?
자기만의 밖은 그저 자기만의 안을 제외한 바깥의 것들이 아니었다. 둘은 대비되는 속성이 아니었던 거다. 자기만의 밖은 나의 영역이면서도 나의 바깥이어야 했다. 나의 세계 안에 있지만 그 세계가 완전히 내 것은 아닌, 그리고 내가 만들 수 없는 것, 내가 언제나 갖고 싶은 것. 애정이 닿아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 나를 바깥의 바깥으로 끌어주는 것, 나와 같다고 여기면서 나라고 할 수는 없는 어떤 것. 네가 되고 싶지만 내가 될 수 없는 어떤 것이었다.
( ? ) ? )
그것들이 무엇인가 더듬거려본다. 마치 수학 공식을 푸는 것처럼 하나씩 대입하다 보니 남은 것들이 보인다. 사강의 글이 그렇고 도마의 노래가 그렇다. 나의 세계 안에 있지만 그 세계가 완전히 내 것은 아닌, 언제나 갖고 싶은 것이면서 애정이 닿아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 나를 바깥의 바깥으로 끌어주는 것이자 나와 같다고 여기면서 나라고 할 수는 없는 어떤 것이다. 나는 그녀들의 언어를, 입을, 흥얼거림을 갖고 또 많이 가졌다. 얼마나 많은 밤과 낮을 함께 했던가. 아주 가끔은 애정어린 질투도 느꼈다. 어떻게 그런 글을 쓸 수 있나, 어떤 마음으로 이런 가사를 썼을까. 어떻게 보면 질투라기 보다는 그 문장에 내가 가득 차 있는 기분을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 것 같은데 내 것이 아니라서 신기한. 그녀들의 문장 위에서 나는 자유롭게 춤을 췄고 완전히 살아 있었다. 문장들을 향한 마음은 날로 커졌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그녀들을 만날 수는 없지만, 나는 앞으로 계속 그녀들과 살아간다. 얘기하자면 끝없는 긴 밤이 필요하고, 미소와 울음이 터져 나오고, 덧붙이는 설명만 많아질 것 같다. 편지처럼 부쳐보고 싶은 도마의 노래를 대신 적어본다.
오래된 소설을 몸으로 읽는다.
도마
오래된 소설을 몸으로 읽는다 문장과 문장 사이 뛰노는 조랑말 잡으러 이 밤에 어딜 간단 건가요 이 밤에 어딜 간단 건가요 바다를 걷고 타는 모닥불 앞에서 내가 챙겨온 비옷과 거짓말 오래된 소설을 몸으로 읽는다 문장과 문장 사이 뛰노는 조랑말 잡으러 이 밤에 어딜 간단 건가요 이 밤에 어딜 간단 건가요 바다를 걷고 타는 모닥불 앞에서 내가 챙겨온 비옷과 거짓말 바다를 걷고 타는 모닥불 앞에서 내가 챙겨온 비옷과 거짓말 우린 같은 선 위에서 뛰거나 걷기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