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로부터
FRIENDSGIVING
박민지_RE: 2022

주리에게

편지를 좋아하고, 잘 써주는 주리에게 이렇게 타자를 두드리며 편지를 쓰는 건 정말 처음인 것 같아. 항상 엽서나 종이에 몇 문장과 단어를 끄적이고 그 짧은 말들에 담긴 길고 긴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면서 건넸던 것 같은데 말이야. 내 기억 속 주리는 직접 찍은 사진을 인화해서 주기도, 내가 생각나는 그림이라며 엽서를 주곤 했는데, 생각하니 우리가 주고받은 것들이 모두 다 손바닥 크기의 것들이었어. 손 안에 가만히 담겨있는 그것들이 좋아서 네게 편지를 받는 날이면 그날 밤에는 그 종이들을 계속 만지작거릴 수 있었고, 서랍 정리를 하다가 불쑥 튀어나와 한 손에 잡히는 그 종이들을 보고 있으면 오히려 내가 그 안에 담겨져 있는 것 같았어. 내 손 안에 담긴 주리의 마음에 내가 가만히 기대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말이야.  

지금은 A4 서식의 종이에 키보드를 두드리면 시스템에 입력된 폰트로 글자가 생기는, 내가 쓰지 않으면 짧은 막대가 깜박이면서 무엇인가가 입력되기를 기다린다는 신호를 보내는 화면을 계속 바라보고 있는데… 새하얀 화면이 마치 눈밭 같다. 오늘부터 날이 드디어 추워지기 시작했어. 그리고 지금 이 문장을 쓸 때 주리야! 여기 첫 눈이 내리기 시작했어. 겨울 같지 않은 날들이 이어지다가 이렇게 갑자기 확 추워지는 순간이 여전히 낯설지만 그만큼 여전히 설레. 그리고 이렇게 첫 눈을 만날 때마다 몸 곳곳에 스며드는 시린 기운과 눈 내리는 날의 하얀 밤이 매번 반가워. 주리가 낯선 곳에서 맞이하는 첫 겨울도 반가운 설렘으로 가득하기를.

주리야. 주리 이름에는 받침이 없어서 ‘주리야’라고 가만히 읊조리면 아무것도 거치지 않고 흘러가는 게 좋아서, 어딘가에서 끊기지도 않고 계속해서 흐르고만 있을 것 같아서 나는 일부러 네 이름을 자주 말해보곤 해. 이 편지의 시작이자 마지막인 말 ‘자기만의 밖’을 받아들고 정말 오랜 시간 고민을 하다가 결국 나는 사전을 찾아보기로 했어. 내게 밖은 언제나 아무 의미 없이 ‘아 나가기 싫다’ 라고 푸념할 때의 그 ‘밖’이었으니까, 어떤 날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그게 ‘밖’의 시작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그렇지만 이런 느낌의 무감각하고 당연한 ‘밖’말고, ‘자기만의 밖’은 무엇일까? 그렇다면 ‘밖’이라는 단어는 원래 어떤 뜻을 가지고 있을까? 라는 생각으로 이 말을 자세히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찾아보니 “밖”은 “어떤 선이나 금을 넘어선 쪽, 겉이 되는 쪽, 일정한 한도나 범위에 들지 않는 나머지 다른 부분이나 일, 무엇에 의하여 둘러싸이지 않은 공간”을 의미한대. “밖”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고, 네 번째 뜻 “무엇에 의하여 둘러싸이지 않는 공간”이라는 글자들을 읽으면서 나는 다시 ‘주리’로 돌아가게 됐어. 아무 것에도 둘러싸이지 않고 어디든 뻗어갈 수 있는 그 소리가 다시 생각났어. 그래서 주리야, 그냥 밖이 아니라 ‘나만의 밖’을 말해야 한다면 내게는 그 곳이 바로 너일거야.

네가 미국으로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건넸던 내 엽서 편지 속에 썼던 말들이 기억나. 아니, 사실 잘 기억나지 않아. 다만 어떤 느낌의 단어들을 썼는지가 희미하게 떠올라. 그 때도 나는 네게 무한한 믿음이라는 느낌의 단어를 썼던 것 같아. 그러니까 정말 그랬나봐. ‘밖’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아도, 생각하지 못했어도 너는 항상 내게 그런 곳이었나봐. 가기 싫은 곳, 마주하기 버거운 곳의 공간이 아니라 자꾸만 말하고 싶고, 나누고 싶은 그런 곳이 주리였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어. 종종 마주치던 만남과 대화들, 하염없이 길을 걸으면서 나누던 시간들, 바다에 있던 너를 만나러 가던 길. 무엇보다도 올해엔 주리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시를 읽고 번역하고 함께 말을 나누면서, 언제나 혼자 읽던 말들을 머릿속이 아니라 바깥으로 내뱉으면서 함께 읽어나가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잖아. 앞으로도 너의 이름을 계속 부르면서, 네가 있는 곳으로 함께 가고 싶어.

편지를 쓰기 전에 너무 막막하기도 했고, 우연한 기쁨을 주는 이벤트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으로 앤 섹스턴의 편지를 모아놓은 책을 펼쳤어. 그러니까 11월 28일 저녁에 책을 펼쳐서 섹스턴이 11월 28일에 쓴 편지를 만날 수 있으려나 하는 기대를 품었던 거야. 그리고 편지가 나타났어! 1958년 11월 28일에 섹스턴이 W. D. 스노드그래스라는 시인에게 쓴 편지였어. 편지 내용은 스노드그래스의 지난 편지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완벽하게 섹스턴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과 통해서 편지 쓰기를 주저할 수가 없었다는 반가움과 설렘으로 가득했던 터라 네게 편지를 쓰기 전의 내 마음과는 너무 달라서 내가 기대했던 우연한 기쁨이 좀 덜하긴 했지만 말이야. 그런데 오늘 새하얀 눈밭처럼 느껴진다고 말하며 빈 페이지를 채우기 시작했을 때, 여기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그 순간 58년 11월 28일의 편지에 쓰여있던 첫눈 이야기가 떠올랐어. 섹스턴이 편지를 쓰던 그날 눈이 내렸고 눈 내리는 창밖을 보면서 섹스턴은 이렇게 적었어. “매해 첫눈이 내릴 때마다 나는 더 어려져. 갑자기, 조그맣고 하얗고 움직이는 모든 것들을, 공중에서, 볼 때마다; 그럼 나는 다시 사랑에 빠지고 어려지고 모든 걸 믿게 돼” (I am younger each year at the first snow. When I see it, suddenly, in the air, all little and white and moving; then I am in love again and very young and I believe everything) 그리고 이 마음이 편지의 시작에서 올해의 첫 눈을 마주했던 내 마음과 꼭 같아서, 주리가 뉴욕에서 맞이하는 첫눈을 바라볼 때의 마음에도 이런 순간이 있길 바라면서 이 편지에도 담아봐.

하얗고 말간 주리의 웃음을 많이 좋아하는, 주리 이름을 자꾸만 부르고 싶어하는 민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