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피비언니에게:
엄마들에 대하여
표착인류

(1)
태초의 속성

도무지 내 안에 남은 사랑이 없다고 느낄 때, 그녀의 주름을 헤아린다. 노인의 쇠잔한 살갗에 패인 주름을 책장 넘기듯 한 장 한 장. 그사이 켜켜이 쌓여있는 고요와 평안을 본다. 수십 년의 사랑과 수십 년의 증오를 감내한 너른 지혜를. 그녀를 보고 있으면 얼룩졌던 사념이 가신다. 고갈되었던 사랑도 충전된다. 그녀. 나의 친애하는, 작고 늙은 가짜 엄마.

그녀는 사랑을 베풀어 고통을 죽인다. 긴 시간 그녀를 핍박해온 주체가 바로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여전히 사람을 사랑한다. 사람을 사랑해서 꾸준히 주에 세 번 성당에 나가 그녀의 신께 기도하고, 연미사와 생미사를 드리고, 주변 사람에게 직접 만든 반찬을 나누고, 바다 건너 네팔에 사는 이름 모를 아이를 위해 헌금도 하고, 당신의 자녀가 덜컥 맡겼던 나를 아직도 어여삐 여겨준다.

가족이 해체된 후 줄곧 내게 엄마의 의의란 존재가 아닌 역할이었고, 그녀는 공석이었던 그 자리를 대신했다. 한 많고 사연도 많은 노년 여성은 어느 날, 황혼의 나이에 당신의 얼굴 혹은 당신 자식의 얼굴을 닮은 사춘기 아이를 한 집에 품었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가족이지만 식구가 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그녀의 집에는 꽃이 많았는데, 해가 잘 드는 거실의 남향 창문 앞에 즐비한 꽃 화분들은 시든 이파리 하나 없이 항상 그 자리에서 조용하고 예쁘게 피어있곤 했다. 개중 어떤 꽃은 개화 시기도 아닌 겨우내 지지 않다가 봄이 되어서야 늦게 졌다. 살 수 있는 모든 생을 끌어모아 살다가 후회 없이 갔다. 그런 식으로 그녀의 꽃 화분들은 화려하지 않을지언정 가지런하고 소담하게 제 몫을 다 했다. 손바닥만 한 다육이 하나도 허투루 키우지 않았으니까. 그렇게나 빼곡한 사랑을 주었으니까. 그녀는 꽃 화분을 키우듯 나를 키웠다. 사랑을 베풀어 고통을 죽였다. 당신보다도 몸집이 큰 아이를 한 집에 들이는 일은 쉽지도 편치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늘 그래왔듯 사랑을 했다. 유일하고도 현명한 방법이었다. 나는 정갈하고 오랜 사랑 아래 빚어졌다.

수년이 흘러 지금의 그녀는 우리가 처음 식구가 되었을 때보다 더 노쇠했다. 머리칼은 희게 바랬고, 젊을 적에는 도자기 같았다던 고운 피부에는 검버섯이 생겼다. 잠자는 시간은 줄어들고, 몸을 일으키는 데에 소요되는 시간은 길어졌다. 나의 보호자였던 그녀였으나 이제는 내가 그녀의 보호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 시간만큼 깊게 진 주름 사이에는 아주 따뜻한 마음이 깃들었다. 긴 세월 지난한 역경을 헤쳐왔음에도 여전히 온화한 노인의 얼굴은 아름답다 못해 가히 고결하다는 것을, 비로소 나는 안다.

가끔씩 내 안에 잔류한 과거의 후유증이 나를 잠식할 때, 그리하여 맑은 눈으로 세상을 보지 못하고 더 이상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을 때. 나는 꽃 화분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을 생각한다. 숱한 주름결 곳곳에 사장된 사랑을 할 수 있는 지혜를 읽는다. 76년을 살아왔음에도 아직까지 사랑을 저버리지 않는 영속성을 가늠한다. 그러면 마침내 상기하게 되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속성은 인간에게 있어 태초적인 것임을. 그렇기에 나도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임을.

(2)
모르겠어요. 엄마.

엄마는 왜 그럴까? 라는 생각을 자주, 아니 항상 했어요. 아빠가 화가 날 때면, 이유가 뭐든 잘못했다고, 죄송하다고 해라. 큰딸이니까 너는 이해해야 한다. 너의 행동이 가정을 망칠 수도 있다. 신중해라. 약속 시간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어기지 말아라. 마음이 힘들어질 때면 혼자 앉아서 기도해라. 모든 말끝에 명령어가 붙었고, 그걸 듣고 자란 저는, 아무리 성숙해지고 저만의 방식이 생겼더라도 엄마의 말이 그대로 녹아 있더라고요.

엄마, 그런데도 도저히 모르겠어요. 엄마가 말씀하신 대로 살아왔고, 그에 더불어 사랑을 줘보고 사랑도 받아보고, 상처를 받아보고 상처도 줘보고, 온종일 웃어도 보고 온종일 울어도 보고 원하는 사람의 가면을 쓰고 행동해보고 상대적 박탈감에 끝없이 추락하기도 하고, 인정도 받아보고 비난도 받아보고,

다했는데요. 엄마, 모르겠어요. 내가 나로 인정되지 않은 순간들이 끝없이, 예기치 않게 찾아와 괴롭히고, 자그맣던 불씨가 타올라서 옷을 다 태워버리고 나면 벌거벗은 아이가 되어버려요. 사는 곳 주변에 매일 걷는 길이 생겼어요. 엄마. 머리가 터지기 직전, 모자를 쓰지 않고, 찬바람에 두피를 하나씩 거쳐 가면, 시원함이 저를 위장시켜버리더라고요. 그래서 매일 걷는 길이 생겼어요. 그 길에는 항상 붕어빵 장사하시는 아주머니가 계세요. 따뜻한 김이 나오고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났어요. 매일매일 그 자리에, 한 자리에, 같은 자세로, 계시거든요 엄마처럼. 따뜻한 엄마 품이랑 달콤한 엄마만의 냄새가 나는 듯해요. 슬퍼요. 엄마. 그리고 이 감정을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어요. 모르겠어요. 엄마가 정답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엄마의 인생도 아직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정해진 답대로 살아가는 사람도 없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그래도 엄마, 알고 싶은데 모르겠어요.

눈물의 이유를 알 수 있는 게 언제였더라.

그저 많이 쌓았고 아꼈고 묵혔던 게 터지고 그걸 눈물이라고 하는데 이유를 말하자면 딱히 모르겠네요. 어릴 적에 달려가다 넘어져도 울지 않던 내가, 사춘기 때 이유 없이 욕먹어도 울지 않던 내가, 숙제하다 드라마 본 게 걸려 발바닥 맞아도 울지 않던 내가, 요즘은 참 갑자기 은근히 자주도 우는 것 같은데 이유는 알 수가 없네요. 세상엔 모르는 게 천지인데 내가 알아도 되는 부분이 있는지, 알 수나 있는 건지, 모르는 게 나은 건지, 그것도 모르겠네요. 그렇지만 저는 여기서 딱 서서 시간이 빠르다고 느낄 만큼 열심히 달려보고 있습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주말이 빨리 찾아오고 월요일도 빨리 찾아옵니다. 정해진 답이 없어도 알려주는 누군가가 없어도 우리 열심히 살아봐요. 우리한테는 아무도 없어도 같이 있지 않아도 같이 있었던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이 있으니깐요. 그땐 그랬지 라는 거 하나씩 있을 텐데 그거 한 번씩 꺼내 보면서 다시 넣어두면서 그렇게 살아가요. 우리.

(3)
10년의 밤

주리 님,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고 계시죠? 가을과 겨울 사이, 어떤 마음을 스치는 중인가요. ‘주리올림’을 통해 하나의 마을 안 여러 시선을 가진 이웃을 마주하는 기분이 들어 반가우면서 기쁘기도 한 것이 잔잔한 웃음을 짓게 하네요. 제가 ‘주리올림’에서 마주한 글에서 느꼈던 것처럼 위트가 담긴 이야기를 꺼내어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어 미리 무게를 잡게 되네요.

저는 삶과 죽음에 대해 늘어놓기를 습관처럼 하곤 해요. 살고 있으면서 죽음에 대해 수없이 생각한다는 것을 엄마가 알게 된다면 까무러쳐 놀라실지도 몰라요. 저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늘 엄마를 찾았어요. 살고 싶을 때, 엄마를 찾았고 죽고 싶을 때도 엄마를 찾았어요. 절박함이 불어올 때만 엄마를 찾는 불효녀가 또 있을까 싶어요. 감정의 억압을 이겨내지 못하는 어느 날에 엄마에게 말했어요. 왜 나를 낳았느냐고. 이 말은 제 인생을 통틀어 가장 삭제하고 싶은 말이기도 합니다. 엄마는 저를 10년 만에 가지셨어요. 결혼을 하고 정확히 10년 뒤에 엄마 뱃속에 들어섰어요. 불효녀임에 틀림없어요. 제가 어느 정도 나이가 들었을 때 엄마께서는 아이가 쉽게 들어서지 않아, 시댁으로부터 구박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그 이야기를 전래동화 말하듯 담담하게 하시는데, 저는 돌연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어요. 당시에 엄마가 그런 대우를 받을 동안 아빠는 무얼 하고 있었냐고 물었어요. 아빠에 대한 원망이 커져만 갔어요. 연이어 엄마의 시간을 감히 상상하게 되었어요. 그럼에도 저는 영영 헤아릴 수 없겠지요. 10년 동안 혼자 견뎠을 캄캄한 밤을. 엄마가 한없이 무너뜨린 마음을 공감할 수 없겠지요. 엄마는 다 지나간 일이라며 모난 구석 없이 자라줘서 고맙다며 저의 손을 잡았어요. 엄마의 손을 잡은 것은 너무 오랜만이었어요. 저는 이미 알고 있었어요. 많은 날을 죄책감 속에 살아갈 것을요. 왜 나를 낳았냐는 말을 해버렸을 때, 엄마에게 평생 지우지 못할 말을 꺼냈구나 했어요.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 없기에 저는 앞으로도 후회하며 살아갈 테지요. 말이면 다 말인 줄 알았던 것일까요. 말 같지도 않은 말을 꺼내어버린 스스로를 자책하는 날들이 많아졌어요. 엄마를 떠올리자면, 기분 좋은 추억을 떠올리기보다 제가 홧김에 뱉은 말들이 떠올라 괴로워요. 죄책감으로 괴로워한다는 것은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에요.

죄책감이 드는 낮이면 밥을 거르고 버스에 올라타요. 영종도의 어느 한 해변.  

바다는 같은 모양을 하고 한껏 상기된 저를 차분하게 만들어요. 엄마가 늘 그랬던 것처럼요. 파도의 결이 매만져주는 것만 같아요. 그럴 때면 늘 엄마의 손을 떠올렸어요. 바다는 아름답기만 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 바다를 본다는 것이 그저 기쁜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결국 알았네요. 사랑하는 마음보다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드는 것. 어쩌면 죄책감이 드는 것도 사랑하기 때문일까요? 괴로움 없는 사랑은 없는 걸까요? 이 답을 명확히 내릴 수가 없는 낮이면, 도망자의 얼굴을 하고 바다에 갔어요. 애써 합리화를 할 수 있다면 괴로움이 덜어질까요. 그렇게 저는 속절없는 말을 바다에 뱉습니다. 바다를 찾는 것처럼 엄마를 찾았고 엄마를 찾는 것처럼 바다를 찾았어요. 감수하고 간직하며 살아갈 죄책감들. 사랑하기 때문일까요. 누군가가 답을 내려줄 날이 올까요. 수평선에 내던지는 질문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어요. 말 없는 바다는, 겪지도 않은 10년의 밤을 떠올리게 하고, 엄마의 주름을 체감하게 하고, 낮아지는 마음을 안겨주고 제자리로 돌아가게 합니다.

저에게 엄마는 사랑의 모습이 행복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준 사람이에요. 이 순간에도 엄마가 저의 모나지 않은 모습만 기억해 줬으면 해요. 형태가 일그러진 사랑일지라도, 사랑 속에 피어나는 괴로움을 외면하지 못할지라도. 꿋꿋하게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고백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이 글을 마친 지금, 다시금 겨울이 왔네요. 주리 님, 글을 쓸 기회를 마련해 주어서 감사합니다. 날이 추워졌네요. 늘 건강 유의하시고, 평온이 오래 머무는 밤들이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4)
문득

문득 그녀에 관하여 오랫동안 생각하다가 나는 글을 도저히 쓸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넘쳐버려서,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폭발하듯 밀려와서, 그녀에게서 좋아하는 내 모습도 보이고, 외면하고 싶은 내 모습도 보여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다가 마구 웃음이 섞여 나와서. 그녀의 행복을 내가 알아차리지 못해서, 그녀의 행복이 오로지 나였던 적이 있는 것을 알아서, 그녀가 감내해 온 외로움의 크기를 잴 수 없어서, 그녀의 외로움을 내 멋대로 단정 짓는 게 죄책감이 들어서, 우리가 너무 많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어서, 그녀의 손이 점점 앙상한 게 느껴져서, 그녀가 언제나 나를 안아주는 게 고마워서, 언젠가 그녀가 내게 너무 큰 상처를 준 것이 기억나서, 그녀가 아직 나의 거짓말을 알아차리지 못해서, 그녀가 영원히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 것을 알아서, 그녀의 엉뚱한 상상이 너무나 재밌어서, 그녀의 세월은 그녀의 고향으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녀를 생각하는 일에 이렇게나 많은 에너지가 쓰여서, 내가 떠올리는 그녀는 너무나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어서, 그녀와 나는 둘만의 비밀을 갖고 있어서, 문득 그녀에 관하여 오랫동안 생각하다가 나는 글을 도저히 쓸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