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피비언니에게:
엄마들에 대하여
여덟 번째 편지

주리에게

어느덧 2022년이네. 새해 복 많이 받아 주리야.

친구에게 쓰는 편지로 새해를 맞이하게 되어 기뻐. 이런 기회를 줘서 고맙구.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어 고마워. 가장 최근 편지 말고도 그 전 편지들에 담겨 있던 모든 이야기들 말이야. 감정적으로 복잡하고 힘들었겠지만 엄마에게 루시아 이모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었던 건 어쩌면 행운일지도 몰라. 자매를 잃어본 적이 없어서 나는 네 어머니의 슬픔을 온전히 이해할 순 없겠지만, 동생과 함께했던 기억이 불러오는 행복은 잘 알아. 어릴 적 언니랑 같이 화장 놀이를 하고 언니를 업어주곤 했다는 얘기만 들어도 둘이 정말 가까웠다는 걸 알 수 있었어. 이런 소중한 기억들을 가슴팍 깊은 곳에 담아두고 계시겠지. 나도 이런 기억들을 들을 수 있어서 영광이다. 그리고 분명 어색했을텐데도 어머니께 민감한 일에 대해 용기 내어 말을 걸어주어 고마워. 난 가끔 우리가 자식으로서 부모님의 슬픔을 어떻게 달래드릴 수 있는지 고민해. 솔직히 진짜 이렇다 할 방법이 없어. 그래도 주리 편지가 많은 도움이 됐어. 가끔은 그저 당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도 드네.

언니를 잃은 어머니의 슬픔을 기억하기보다, 언니와 함께할 수 있었던 어머니의 행복을 기억하자.

기억들을 말하고 듣는 건 꽤나 기묘한 경험인 거 같지 않니? 내가 마지막 편지에 엄마와 관련해서 뭔가 특별한 걸 해보고 싶다고 말한 거 기억해? 원래 계획은 엄마랑 인터뷰를 하는 거였어. 엄마랑 마주앉아 준비한 질문을 여쭤보는 식으로. 근데 그게 너무 어색하더라. 진행할 수가 없었어. 9시 뉴스를 진행하는 느낌이었거든. 그래서 몇 주고 미루면서 어떻게 할 지 고민하다가 결국 그냥 일단 해보기로 했어. 머릿속에 바로 떠오르는 세 가지 질문으로 시작했지.

아래는 인터뷰 전문.

피비: 엄마, 내가 내 친구랑 엄마들에 대해 편지를 주고받고 있다고 말한 거 기억나?

엄마: 응

피비: 질문 몇 가지 해도 될까?

엄마: 지금? 어려운 질문이야?

피비: 아닐걸

엄마: 그래 해봐

피비: 첫 번째 질문이야.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뭐야?

엄마: (생각하더니) 음식? (42초 동안 생각하다가) 때마다 달라

피비: 지금은?

엄마: 지금? 오리구이!

피비: 왜?

엄마: 아니다, 돼지구이. 나 돼지구이 원래 좋아해

피비: 왜?

엄마: 몰라, 그냥 맛있어

피비: 오케이. 두 번째 질문은–어릴 때 뭐가 되고 싶었어?

엄마: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

피비: 왜?

엄마: 내 선생님들처럼 되고 싶었거든. 다들 너무 멋져보였어. 우리 엄마 아빠가 집에서 일해서 그런지 몰라도 선생님들을 보면, 막, 우아! 이랬어

*우리 조부모님들은 재단사였어. 우리 엄마는 5살 때부터 바느질을 할 줄 알았고.

피비: 좋아. 마지막 질문이야!

엄마: 오케이

피비: 엄마랑 내가 닮은 거 같아?

엄마: 너 돼지구이 좋아하니?

피비: 음 그다지.

엄마: 선생님 하고싶어?

피비: 응!

엄마: 그다지 닮은 거 같진 않네

피비: 왜?

엄마: 아 이거 되게 어려운 질문이네. 우리 지적인 면에서는 아마도 닮은 거 같은데… 그리고 뭘 하는 거에 있어서도… 응 꽤 닮은 거 같아

피비: 뭘 하는데?

엄마: 그냥 좀 꼼꼼한 거?

피비: 맞네

엄마: 근데 유머 감각은 아냐

피비: 엄마는 어떤데?

엄마: 난 어디서든 유머러스한 걸 찾는데 넌 그런 거 같지 않아

피비: 맞아

엄마: 난 나 스스로 되게 진지하다고 생각하는데 또 한편으론 모든 걸 다 가볍게 여기기도 하는 거 같아

피비: 맞지

엄마: 난 긍정적인 면을 주로 보는 편인데 넌 그보다 더 깊은 면들을 보는 거 같아. 그래서 긍정적인 쪽을 보지 못할 수도?

피비: 맞는 거 같아

엄마: 가끔은… 좀 떽떽거리기도 하고

피비: 확실히 내가 부정적인 면을 보는 습관이 있어

엄마: (말이 없다)

피비: (역시 말이 없다)

엄마: 이제 된 거야? 괜찮았니?

피비: 응. 시간 내줘서 고마워 엄마

엄마: (웃으며) 돼지구이는 좀 애매하긴 해. 되게 좋아하긴 하는데 항상 그것만 먹고 살 수는 없잖니. 인생이 그렇지 뭐

피비: 맞는 말이야

*

엄마와의 대화를 받아쓰다 느낀 건데, 엄마의 정신을 분석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어. 엄마가 하는 말을 듣기만 하자, 숨겨진 의미를 찾거나 엄마의 생각을 바꾸려고 하지 말자, 그저 엄마의 의견을 듣고 엄마가 그걸 나와 공유해주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자, 라고 계속 되뇌었어. 아마도 십 년 안에는 이 질문들을 다시 물어볼 기회가 있겠지. 그 때도 엄마가 계속 돼지구이를 좋아하고 있을지, 아니면 엄마가 생각했던 것보다 엄마랑 내가 더 닮아있게 될지 누가 알겠어.

안나에 대해 편지를 써 준 주리에게 고마워. 그리고 우리 엄마 조이스, 그리고 할머니 미추* 이야기를 들어줘서 또 고맙구. 딸 입장에서, 우리는 우리가 엄마들과 맺고 있는 이 복잡한 관계를 잘 이해하는 거 같아. 막상 우리가 스스로 엄마들에게 느끼는 이 묘하게 친근감과 거리감이 섞인 느낌을 어떻게 정확히 조절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더라도 말야.

*미추: 우리 할머니 이름이야. 메이치우라고 발음하는데, 직역하면 아름다운 가을이라는 뜻.

친구가 친구에게, 딸이 딸에게,
고마워,
새해 복 많이 받아 주리야!
행복하렴.

너의 친구,
피비가

2022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