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송되기 위해 쓰인 편지
엄마.
법적으로 성인이 된 이후로 오랫동안 당신에게 편지를 쓸 수 없었어.
편지를 쓰려다가도 텅 빈 편지지 앞에 서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어. 머릿속이 꼬인 실타래가 되어 숨이 턱 막히고, 그래서 연필을 들기 전에 몇 번이나 다시 내려놓기도 했어. 당신의 생일날이 다가오면 진심 담은 편지 하나 써주고 싶은 마음이 삐쭉 올라오곤 했으나, 결국엔 그 마음을 작은 선물로 대신했었지.
편지에 무슨 말이 들어가야 할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사실 문장이 아니라, 마음의 갈피를 못 잡는 새벽이면.
조용히 방문을 열고 방에서 기어 나왔어. 당신이 곤히 잠들어 있는 거실을 지나쳐, 안방 화장대 밑 서랍에 보관된 오래된 종잇조각들을 꺼내 봤어. 어렸을 적 나와 동생이 당신에게 썼던 편지들 말이야. 그거 알아? 어쩌면 이 편지들 당신보다 내가 더 많이 펼쳐봤을지도 몰라.
편지에는, ‘낳아주고 길러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대하는 만큼 열심히 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더 노력해 보겠다’, ‘호강시켜드리겠다’ 하는 식의 말들이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혀있더라. 가볍고 무거운 말들, 순수한 말들, 가엾은 말들. 호강의 뜻이 뭔지도 몰랐으면서. 그 편지를 읽을 때, 어떤 마음이 들었어? 내 말을 믿었어? 이젠 그 말을 할 수 없어서, 그래서 쓰지 못했던 거야.
나와 동생은 그냥, 당신의 사랑과 노력에 보답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지. 그렇게 당신의 기쁨이 되고 싶었던 거지. 고등학생 시절 쓴 편지에는 당신에게 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이 적혀있더라. 계절에 따라 변화면서도 한결같이 그곳에 있는 사람. 그래서 당신이 의지할 수 있는 사람. 어른이 되면 나는 자연스레 그런 사람이 되어 있을 줄 알았어.
그러나 여전히 당신이 나의 나무인 것 같아. 나는 당신의 나무가 되고 싶다가도, 잎사귀가 만들어내는 그늘을 훌쩍 벗어나 다른 나무를 타고 싶어 하는 청설모 같은 인간으로 커버렸어. 그런데도 집으로 향하는 밤거리를 홀로 걸을 때면, 당신에게 나의 삶과 행복에 대해 묻고 싶은 마음의 그림자와 습관적으로 마주해. 마치 나의 기원인 당신에게 내 삶의 답이 놓여있다는 듯이.
엄마, 나 어떻게 살아야 할까?
엄마, 당신의 기대를 저버리고 내 삶을 찾아가도 될까?
엄마, 그래도 나를 응원해 줄 수 있어?
마지막 질문까지 던지고 나면 부끄러운 눈물이 터져. 나이가 몇인데, 이런 질문을 해.
한결같이 엄마의 기쁨에 관심 없는 나를 봐. 지금도 내가 엄마의 유일한 기쁨일 것만 같은, 그런 착각을 하나 봐.
아. 이제는 내가 모르는 당신의 기쁨이 많아졌으면 좋겠어.
당신의 기쁨이 사실은 내가 아니듯. 궁금할 수 있게.
사소한 거라도 혹은 이해할 수 없는 거라도 들어보고 싶어.
언젠가 서로가 모르는 각자의 기쁨을 찬찬히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나무 말고, 서로의 친구가 되는 그런 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