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피비언니에게:
엄마들에 대하여
일곱 번째 편지

피비에게,

아니, 엄마에게는 닌자 거북이 게임을 기억하는지 물어보지 못했어. 점점 엄마와 대화하는 게 어려워. 가끔 전화를 하더라도 서로가 서로를 답답해하다가 결국 화를 내며 전화를 끊어.

엄마는 내가 조금 더 아빠의 편이 되어줬으면 하고, 나는 아빠를 사랑하지만 이제 아빠의 편이 아닌 내 편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중이거든.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더 이상 아빠의 불안한 세계를 지키는 사람으로는 살아갈 수 없겠다고. 그러고 싶지 않다고.

반대로 나는 엄마가 아빠 편에 서기 전에 엄마 자신의 편이 되어줬으면 하는데, 그러니까 엄마 자신을 최우선으로 돌보면서 살아갔으면 하는데, 우린 좀처럼 서로의 말을 듣지 않아.

언니, 그래서 나는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해 엄마와 이야기하는 게 어려워. 대신 나에겐 없었지만 엄마에게 있었던 일에 대해 하나 이야기해 줄게.

언니와 이 편지를 주고받기 전에 말이야. 나는 집에 가서 내 어린 시절 사진들을 모아 스캔을 했어. 엄마와 찍은 사진들도 따로 폴더에 모아두고. 그러고 나서 보니 엄마의 사진은 다 '엄마' 가 된 이후의 사진이더라고. 그러다 보니 엄마 되기 이전의 엄마에 대해 궁금해졌어. 그 일에 대해서는 엄마와 이야기해 본 적이 있어.

나의 엄마, 안나는 경상도 어느 시골집 막내딸로 태어났어. 안나에게는 한 살 많은 루시아 언니가 있었는데, 엄마 말로는 루시아 언니가 남매 중에 제일 예쁘고 똑똑했대. 그런데 일곱 살 때인가 뇌수막염에 걸렸어.  

이후 가족의 모든 일은 루시아 언니를 중심으로 돌아갔어. 체력이 좋은 엄마는 어릴 적부터 언니를 업고 이곳저곳 다녔대. 같이 화장품을 사고, 귀도 뚫으러 가고. 엄마는 용돈이 모이면 반짝이는 귀걸이를 사들고 언니에게 달려갔대. 그걸 언니 손에 쥐어 주면서 엄마는 컸대.

하지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장 큰 외삼촌이 결혼을 하고, 어느 날 더 이상 루시아 이모와 함께 사는 것이 어려워진 날이 생겼대. 외할머니는 자기가 이모보다 하루라도 더 살고 갈 마음으로 열심히 사셨지만, 아프셨어. 이모는 결국 큰 고모님이 원장으로 계시던 시설에 가셨대. 거기 살다 돌아가셨고. “자주 가겠다고 했는데…” 엄마는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돌아서서 물주전자를 올렸어.  나는 엄마 등을 바라보며 아무것도 무너지지 않기를 기도했어.

나는 이 이야기를 루시아 이모가 돌아가시고 한참 뒤에야 들었어. 이모는 내가 고등학생 때 돌아가셨고, 나는 스물여덟에야 이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이모가 돌아가신지 십 년 뒤에야 이모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지.

언니. 나는 가끔 아이를 갖고 싶어.

아주 긴 문장을 쓰다가 모두 지우고 위 문장을 써보았어. 쓰다 보니 조건이 너무 많아지더라.

지금 나는 결혼 생각이 없고, 혼자 아이를 낳고 키울 능력도 없어. 언니의 엄마 말대로 산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데 거기에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일 이유도 없고.

나는 왜 아이가 갖고 싶을까? 그래도 내가 그리는 집에는 어린 가족 구성원이 있고, 내가 그리는 집 벽지에는 낙서가 있어.

생각이 많은,
주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