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피비언니에게:
엄마들에 대하여
네 번째 편지

주리에게,

답장을 쓰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네. 답이 너무 늦어진 걸 용서해 주길. 오늘 네가 있는 곳은 추석이고, 내가 있는 싱가포르는 한가을 축제가 한창이야. 나는 얌(yam)과 방부제 가득한 월병을 먹으면서 명절을 보냈어. 사실 만두나 더 먹고 싶었는데 그러려면 6월에 있는 용선(the Dragon Boat) 축제까지 기다려야 해. 주리는 추석에 뭘 먹었니?

네 편지를 읽으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 난 이슬아의 작품은 몰랐는데 그 작가가 쓴 자기 어머니의 성생활에 관한 에세이에 대해 너로부터 듣고 나니 여성 연대를 공고히 하려는 작가의 ‘불편한’ 시도를 상상해볼 수밖에 없었어. 정말 멋진 시도이고, 또 네 말대로 우리 모두 이런 걸 해봐야 해! 어쩌면 나도 엄마랑 얘기해볼 수... 으아아, 방금 상상해봤는데 우린 그냥 어쩔 줄 모르면서 서로를 심각하게 바라보고만 있게 될거야. 이슬아의 에세이 영역본이 있다면 보내줘! 내가 용기를 낼 수 있게!

자, 지금부턴 주리가 <도서관>에서 대출해 준 어머니 이야기를 내 <도서관>에 있는 이야기들 중 하나로 보답할게.

지난 주 쯤이었나, 미얀마 출신 영화 제작자인 라민 우(Lamin Oo)가 만든 <세 낯선 이들>이라는 영화 시사회에 참여했어. 내가 지금 편지를 쓰는 이 순간에도 영화는 아직 미개봉 상태인데 운 좋게도 미리 슬쩍 훑어볼 수 있었지. 

영화는 미얀마 서부 지역의 라카인 주(Rakhine State)에 있는 외진 마을에 사는 세 명의 사람들에 대한 다큐멘터리야. 한 명은 과 투(Gwa To)라고 하는데, 여자의 몸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남성으로 살아가길 택했어. 다른 하나는 마 소(Ma Soe)이고, 역시 여자의 몸으로 태어났는데 과 투를 남편으로 선택했지. 마지막은 피 흐투(Phoe Htoo)인데, 어릴 적에 그를 돌볼 여력이 없었던 어머니와 이별을 해야 했어. 이 세 낯선 이들은 한 가정을 꾸리고 있어. 주리도 아마 예측했겠지만, 이 영화는 ‘정상적인’ 가족의 일상을 가장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그린, 또는 ‘비정상적’인 가족 이야기를 가장 ‘정상적’으로 그린 아름다운 작품이야. 

영화 속 내가 애정하는 장면들을 주리에게 모조리 얘기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무수한 장면들이 머릿속에 아른거리는데, 이를테면 열 살 치곤 키가 꽤 큰 피 흐투가 마 소의 무릎자락에 아기처럼 기어들어가는 장면, 과 투와 마 소가 함께 앉아 새우 껍데기를 벗기면서 누가 아들을 위해 더 희생했는지 다투는 장면. 또 과 투가 피 흐투를 아주 멀리 떨어진 마을에 사는 생모의 집에서 입양하던 이야기를 들려주던 와중에 입양한 아들이 겪은 아픔을 떠올리고는 감정적으로 무너지는 장면도.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과 투가 그 아픔을 아들의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처럼 느끼는 것 같앗어. 이걸 보고는 한 사람의 몸이 과연 자기 것이 아닌 고통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어.

너도 엄마를 볼 때면, 엄마가 느끼는 고통을 가끔은 알 것만 같은지 궁금해. 왜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래. 하지만 동시에 난 내가 모른다는 것도 알아.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내가 지은 <도서관>에서 뭐든 뒤지고, 붙잡고, 또 기어들어가는 수밖에.


사랑을 담아,
“만두 귀신” 피비가

PS: 어머니께서 물려주신 옷들 덕분에 네 옷장이 어머니와 같이 쓰는 작은 도서관이 되었구나. 얼마나 놀랍고도 멋진 일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