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언니, 언니.
나야말로 답장이 늦어져서 미안해. 근데 우리 계속 늦자. 늦어도 미안해하지 말고, 슬슬 겨울을 맞자.
방부제 잔뜩 들어간 월병이라니. 언니는 월병 정말 별로 안 좋아하는구나! ㅋㅋ 언니는 나보다 월병을 자주 접하니까 더 싫은 걸지도 모르겠다. 멀리 있으면 뭐든 조금 더 쉽게 좋아할 수 있는 것 같아. 착각이겠지.
내게 월병은 우리 동네의 맛이야. 내가 어릴 때 살던 집, 지금도 엄마 아빠가 사는 집은 의정부라는 시내 한복판에 있는데,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각종 나이트클럽과 호프집이 몰려있는 거리였어. 집 앞에는 동네에서 제일 유명한 중국집이 있는데 중국인 사장님이 꼭 내가 등교하는 시간에 물로 마당 청소를 했어. 내가 아저씨를 슈슈(shūshu)라고 부르면 아저씨가 환하게 웃으면서 호스를 흔들던 기억이 나. 추석이 되면 아저씨는 엄마에게 꼭 월병을 건넸는데 우리 집 사람들은 월병을 받으면 항상 난처해했지. 익숙한 맛이 아니거든. 그런데 나는 겉에 밀가루가 쉽게 부스러지는 느낌도 좋고 그 안에 사탕 맛이 나는 것도 신기해서 우유랑 제일 많이 먹었어. 그게 방부제 역할을 하는 거겠지? 언니도 기억나는 월병이 있어? 언제 제일 질렸어? 할머니도 월병을 싫어하셨어?
언니가 말한 그 영화, 예전에 언니가 킥스타터 펀딩 추천한 영화 맞지? 덕분에 킥스타터는 처음 해봤어. 펀딩하고 얼마 되지 않아 미얀마 군부 쿠데타 소식을 듣고 영화와 감독이 모두 무사하기만을 바랐는데, 시사회 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마음이 조금 놓인다. 열 살치고도 꽤 큰 피흐투가 마소 품을 파고드는 장면을 상상하니 좀 웃겼어. 왜, 그런 나이 있잖아. 아직 아기인데 어느새 어린이이고 앞으로 몇 년 뒤에는 학교 안팎에서 조금 더 어려운 셈을 배워야 하는 나이. 열 살 때쯤 나는 엄마에게 와락 안기는 건 이제 아기들이나 하는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동생이 있어서 그런지, 조금 더 어른스러운 척하느라 바빴어. 하지만, 너무 안기고 싶은 거야! 그래서 그 무렵 나는 게임을 하나 개발했어. 이름하여 ‘닌자 거북이 게임’인데, 엄마-나-동생 일렬로 서서 뒤에서 껴안고, 다 같이 엉덩이를 양 옆으로 씰룩 거리는 거야. 한참 씰룩대다가 갑자기 엄마가 엉덩이를 쭈욱 내밀면 우리는 와아-웃으며 튕겨나갔지.
닌자 거북이 게임을 하면, 엄마의 표정을 보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어. 나는 겁이 많아서 엄마의 표정을 제멋대로 읽거든. 그때도 가끔 엄마의 얼굴 안에 무너져내리는 건물이 있는 것 같았어. 나는 정말 건물이 무너져내릴까봐 엄마의 등 뒤로 잽싸게 숨곤 했어. 그리고 닌자 거북이 게임을 하자고 졸랐지. 엄마의 엉덩이가 내가 예상한 타이밍보다 빨리, 혹은 늦게 튀어나오면 좋았어. 내가 엄마를 잘못 읽었다는 감각, 그 감각 덕분에 안심할 수 있었던 것 같아. 언니는 기억나는 엄마의 표정이 있어? 아니면 표정을 보면 다 알 것만 같아서, 피한 적이 있어?
주리 올림
PS1: 우리 다음에 만나면 만두를 먹자. 용선(The Dragon Boat) 축제보다 더 기다려야 할 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PS2: 이슬아 작가 영역본이 나오면 꼭 공유할게. 진짜 재미있을 거야. 막 그런 얘기도 있어. 엄마, 아빠가 분명 침대에서 섹스를 시작했는데, 끝나고 보니 둘 다 바닥에 있었던 이야기. 나도 엄마한테 이런 거 물을 수 있을까? 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