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피비언니에게:
엄마들에 대하여
두 번째 편지

주리(July)에게,

편지 고마워. 정말 즐겁게 읽었어. 이렇게 먼 거리서 서로에게 편지를 쓰니 거리감이 확 느껴지네. 마치 나 혼자만의 상념에 빠진 것처럼 말야. 그렇지만 동시에 이 거리감 덕분에 마음이 편해져. 소리 없이 얘기하니 더 솔직해지는 면도 있는 것 같아.

싱가포르에도 꽤나 낯선 비가 내렸어. 작년에도 그랬지만 여긴 보통 7월에 걸쳐 비가 많이 내려. 하지만 이번에는 월 초에 비가 엄청 내리더니, 비가 그친 지난 2주 동안은 계속 덥고 습했어. 적어도 평소보다는 그래. 비가 참 그립네.

주리야. 7월(July)은 내게 특별한 달이야. 그리고 오늘, 25일은 특히나 특별한 날이고.

할머니께서는 십 년 전 오늘 돌아가셨어. 조부모님 중 살아계시던 유일한 분이었고 나랑 가장 가까운 분이었어. 할머니는 내가 네 살이 될 때까지 낮동안 일터에 계신 부모님을 대신해 매일 돌봐 주셨어. 아침이면 할머니는 할머니댁 근처에 있는 체육관에 나를 데려가서 친구분들과 함께 운동하셨지. 오후에는 점심으로 항상 밥과 생선 요리를 챙겨주셨어. 생선을 먹으면 수영을 더 빨리 할 수 있을 거라면서. 저녁이 되면, 부모님이 나를 데리러 오기 전까지 함께 침대에 누워 졸면서 중국어 노래들을 불러주셨어. 내가 처음으로 등교하던 날, 나는 할머니들이랑 친구가 되는 게 그들의 손자뻘인 내 또래들이랑 친해지는 거보다 더 좋다는 생각을 했어. 그리고 처음으로 참여한 수영 대회에서는 어떤 메달도 받지 못했지. 지금은 말야. 생선이 싫어.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난 다시 할머니 침대에 누웠어. 몇 년 만에 처음으로, 혼자서.

내 머리 속에는 할머니의 이야기들로 가득 찬 도서관이 하나 있어. 아주 오랫동안 난 그걸 어떻게 글로 옮겨적을 수 있을 지 고민해 왔어. 솔직히 말하면 그래도 되는지조차 잘 모르겠네. 어쨌거나 할머니의 이야기는 할머니 거니까. 내가 맘대로 말할 수 있는 건 아닌거지. 할머니의 이야기는 또 엄마의 이야기이기도 한데, 여전히 내 건 아니고. 음, 그래도 이 모든 이야기들 중 적어도 하나는 내 것이라 할 만한 게 있겠지, 아마? 언젠가는 그게 뭔지,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 알 수 있겠지.

내 마음 한 켠에는 할머니를 이해하려는 욕망이 엄마를 이해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있어. 엄마를 한 명의 딸로 이해할 수 있다면, 엄마를 엄마로서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지도 모르지. 아마도 이게 내가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영화를 볼 때마다, 길고 지루한 논문을 쓸 때마다 엄마들과 할머니들을 찾는 이유일지도. 내가 만약 이 여자들을 분석하고 그들의 세계를 탐구할 수만 있다면, 내 엄마의 세계 또한 들여다 볼 수 있지 않을까. 주제 넘는 일일까? 이런 식으로 엄마를 정신분석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게 말야. 비겁한 짓일까? 그냥 엄마한테 직접 물어볼 수도 있는데 말야.

아마도 언젠가는 엄마한테 편지를 써야겠어.


너의 친구,
피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