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자 거북이 주리에게,
이제 11월이네. 싱가포르에는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
네가 개발한 게임 이야기 진짜 재밌다. 얼마나 소중한 기억일지. 나랑 공유해줘서 고마워. 혹시 네 동생이나 어머니에게도 아직 그 기억이 남아있는지 물어본 적 있어? 나도 내가 만들어낸 자잘한 게임들을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은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거든.
열 살의 피비도 주리와 같았어. 애처럼 굴지 않으려고 얼마나 용을 써댔는지. 낮에 낮잠 안 자고 밤늦게까지 깨어 있겠다고 고집을 피워댔던 기억이 나.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너무 짜증 났어. 도대체 왜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거든. 또 학점을 잘 받아야 하는 것도 그렇고, 치마를 입어야 하는 것도 그랬어. 아, 오해하진 마. 언제 어디서나 낮잠을 잘 수 있다는 건 꿈이 이뤄진 거나 마찬가지지. 그래도 난 평생 치마를 입지 않아도 되는 쪽을 택할래.
열 살 때부터 서른이 되기까지 난 커 가면서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만 했던 거 같아. 몇 년 전이었나, 내가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해서 나한테 실망하진 않았느냐고 엄마한테 물어봤어. 내 결심은 확고하지만, 그 결정이 엄마의 기분을 상하게 하진 않았는지 여전히 조심스러웠거든. 내 생각엔 대부분의 딸들이 그러지 않나 싶어. 우리가 스스로 택한 삶의 방식이 엄마들의 마음에 들지 않을까 봐 속으로 조바심 내는 거 말이야. 우리가 그들을 엄청나게 실망시켰을 수도 있다는 생각. 그러니까 우리가 특정한 방식으로 머리를 묶지 않았다거나, 조건이 좋은 일자리를 거절했다거나, 완벽한 배우자감과 (세상에 그런 게 있을까 싶지만, 만약 있다면) 결혼하지 않았다거나 해서 말이야. 하지만 우리는 엄마들도 한때는 딸들이었다는 걸 까먹곤 하지.
내 질문이 끝나자 엄마는 잠시 뜸을 들이고는 “아니,” 라고 답했어. 엄마의 답변은 침착하면서도 확고했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이었어. 난 엄마가 아이들을 너무나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거든. 엄마도 분명 내가 놀랐다는 걸 아셨을 거야. 왜냐하면 엄마는 이어, “산다는 건 너무 어려워. 거기에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일 이유는 없지 않니?”라고 말씀하셨거든. 아마 어떤 사람들은 엄마가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 너무 퍽퍽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가 그 말을 들었을 때 난 엄마가 나를 이해하고 있음을 느꼈어. 내 기억에 그날 우리는 좀 더 친한 친구 사이처럼 대화를 이어갔던 거 같아.
주리는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해서 엄마랑 얘기해 본 적 있어? 주리 어머니는 무엇을 내다보고 계실지 궁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