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나는 익숙한 곳에서 낯선 여름을 보내고 있어. 요즘 서울에는 시도 때도 없이 소나기가 내려.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하기도 전에 비가 이렇게 자주 내리는 건 무척 어색한 일이야.
오늘도 그래. 아침에 산책을 하러 나갔는데 갑자기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하는 거야. 당황했지만 바로 집에 들어가기는 싫어서 막 문을 연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시켰어. 그런데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다 마실 때까지도 비가 그치지 않는 거야. 결국 비를 맞으며 천천히 걸었어. 언니가 사는 곳은 비가 자주 내린다고 했지? 비가 자주 오는 곳에도 낯선 비가 있을까? 언니는 낯선 비를 만나면 어떻게 하려나.
내가 엄마(들)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 받고 싶다고 말했을 때 선뜻 받아줘서 고마워. 그런데 언니, 나 사실 왜 엄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어. 그냥 글을 읽거나 쓸 때 자꾸 엄마들에게 눈이 가고, 그들에 대해 제대로 말하고 싶어. 하지만 자꾸 실패해. 많이 읽을수록 왜인지 글은 더 못 쓰겠고. 그러던 와중에 언니가 쓰는 영화 소개 뉴스레터를 읽었어. 어머니의 날(mother’s day)을 맞이하여 다양한 어머니를 다룬 열 편의 영화를 소개한 그 글 말이야. 분명 그걸 읽던 중이었는데, 정신차려보니 어느새 내가 언니에게 메시지를 보냈더라고. 엄마들에 대해 언니랑 이야기하고 싶다고.
메시지를 보내고 얼마나 후회했는지 몰라. 갑자기 맥락 없이 엄마에 대해 이야기 하자니, 이상하잖아. 그래서 반쯤 걱정하며 기다렸는데, 언니 답장 받고 좋아서 입이 막 벌어졌어. “좋아! 그럼 나는 할머니에 대해 이야기해도 될까?”라니. 답장과 함께 사진도 보내줘서 고마워. 사진 속 어린 언니와 할머니는 웃는 입가가 무척 닮았더라. 언니에게 할머니는 어떤 존재인지 궁금해.
나의 엄마 안나에 대한 이야기로 첫 편지를 쓰고 싶었는데, 쓰다 보니 글이 넘쳐서 덜어냈어. 언니의 답장을 기다리며 조금 더 고민하고 있을게! 천천히 답장해줘. 느긋하게 기다릴게.
주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