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구자. 시간이 흘리고 간 흔적의 틈에서 지난밤을 재생하기 위해 창조성을 발휘하는 사람. 숨바꼭질. 벌건 눈을 부릅뜨며 어슬렁거리던 술래가 그다음 판에는 주어를 데리고 단어 사이로 숨어버리는 놀이. 도미노. 하나가 지닐 수 있었을 가능성들의 행렬. 언어와 상상 사이에 부는 서늘한 골바람. 어지럽게 나부끼는 머리카락 사이로 스러지는 하나의 광경.
2.
□ ‘동물실험윤리위원회 운영 및 동물실험 실태조사 현황자료’(2022)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우리나라에서 4,880,252마리의 동물이 법적 규제시험을 통한 안전성 평가, 생물학 연구, 교육 및 훈련 등의 목적으로 사용됨
○ 실험에 사용된 동물의 수는 ’19년도부터 ’21년까지 증감률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으며, ‘21년도는 전년도 대비 738,819마리 증가한 수치를 보임*
* (2019년) 3,712,380마리 → (2020년 ) 4,141,333마리 → (2021년) 4,880,252마리
○ ’20년 대비 ‘21년도는 17.8%의 증감률, ‘19년 대비 ’20년도는 11.5%의 증감률을 보임
○ 사용된 실험동물 종류별로는 설치류(마우스, 랫드)가 가장 많고(72.5%), 다음으로는 어류(18.9%), 조류(6.5%), 기타 포유류(1.41%), 토끼(0.5%), 원숭이류, 양서류, 파충류 순으로 사용되었음(’21)
□ ’19~’20년도 전체 실험동물 중 D, E고통 등급*에 해당하는 그룹은 전체 개체수 대비 70% 이상을 차지하며, 해당 개체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됨
* 실험동물에게 가해지는 고통의 등급은 정도가 가장 낮은 A등급부터 가장 높은 E등급까지, 5개의 단계로 구성되어 있음
** (2019년) 73.9% → (2020년) 73.9% → (2021년) 77.9 %
○ 고통을 줄여주는 약물을 주입해야 할 수준의 중등도 이상의 고통이나 억압을 주는 D등급 실험으로 사용된 동물의 수는 총 1,618,920마리(’21)로, 이는 전체의 약 33%를 차지함
○ 의식 있는 동물이 마취 없이 참을 수 있는 한계 또는 그 이상의 극심한 고통을 주는 E등급 실험으로 사용된 동물의 수는 총 2,181,207마리(’21)로, 이는 전체의 약 45%를 차지함
□ 한국 정부는 동물보호법 전면개정*을 통한 동물실험윤리위원회 심의 및 감독 기능 강화, 동물복지 교육 및 3Rs 정보를 공유하는 정보 보급체계** 마련 등 동물복지 문화를 발전시키 위한 제도적 시도를 하고 있으나, 이용되는 동물들의 복지 향상에 실효성 있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여부는 지속적으로 점검될 필요가 있음
* ’21년 「동물보호법」 전면 개정, (기존) 7장 55개조 → (확대) 8장 101개조
** 이중 하나는 한국3R정보센터로, 1959년 러셀 교수와 버치 박사가 제시한 동물실험의 3Rs 원칙(감소, 완화 및 개선, 대체)을 윤리적 동물실험을 위한 기본원칙으로 활용하고 있음
[참고]
- 동물실험윤리위원회, 2019∙2020∙2021 동물실험윤리위원회 운영 및 동물실험 실태조사 결과
- 농림축산검역본부, 동물실험 및/또는 실험동물 관련 위원회 표준운영 가이드라인(2020)
- 농림축산식품부, 2020~2024 동물복지 종합계획(2020)
- NC3Rs∙동물을 위한 행동, 동물복지에 입각한 실험동물의 종별 사육조건
4.
발가벗은 겨울 나무의 모습으로, 흰 화면 속 검은 표는 숫자들을 단정하게 품었다.
내가 사랑한 그의 입꼬리와 너의 입꼬리는 어쩐지 닮았다.
5.
겨울철 나무의 앙상한 가지를 올려다보는 것이 좋다. 연하늘색 배경에 짙은 나뭇가지가 이루는 대조, 그 명확한 날카로움에 매번 아찔한 기분이 든다. 물컹한 몸이 찔리고, 찢기고, 이내 펑 터져버리는 상상. 피부 사이로 뜨끈한 국물이 울컥 새어나오는 상상. 그러한 이유로 친구들에게 타투를 받고 싶다며 떠벌리고 다녔다. 나라는 모양을 잃고 흘러내릴 수 있다면, 세상의 모든 구멍을 여행해봐야겠다. 아니면 송홧가루가 되어 막 날아다니다가 사람들의 기도를 타고 뱃속으로 들어가 볼까? 스스로를 파괴하고 싶은 마음과 다른 존재에게 닿기를 갈구하는 마음이 양면을 지닌 하나의 동전이라면? ‘피부라는 경계를 뚫고 어떠한 밖이라도 가닿고자 해.’ 이런 문장을 쓰는 까닭을, 힘은 항상 한 쌍으로 존재한다는 작용-반작용 물리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 만약 내가 검지로 사과를 민다면, 사과도 같은 힘으로 검지를 밀고 있다는 거다. 이게 마음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따라서 이 피부는 어느때보다 질기다. 누구도 나를 찌를 수 없을 것만 같다.
나를 안심하게 하는 동물을 제외하고는. 최근 들어 적어도 동물에게는 겁내지 않고 마음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내 멋대로 쟤들을 귀여워하는 것이 심각한 착각에 기반한 폭력이라 믿었다. 그저께는 기타 학원 선생이 키우는 몰티즈를 품 안에 넣고 쓰다듬었다. 푹신한 발바닥을 만지고, 작은 뒤통수에 코를 박고 볼을 부볐다. 주인이 말하길 그 아이는 다리가 아파서, 발 만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미안하다고 했으나 그 아이가 알아들었는지 확인하지는 않았다.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몸에서는 비릿하고 고소한 냄새가 났다. 저번 주에는 아파트 화단에 마주친 동네 고양이에게 동결건조한 물고기 간식을 챙겨주었다. 얼른 달라며 보채던 고양이의 날카로운 발톱이 손가락을 할퀴었다.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간식을 받아먹는 고양이를 보며 미소를 짓다가,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업로드했다. 사람들은 하트를 눌러주었고, 손가락은 며칠 동안 따가웠다. 출근하는 길에는 양재천 근처에 사는 까치가 꽁지깃을 까닥거리며 가지 위에서 중심을 잡는 모습을 구경했다. 하얀 앞섶과 칠흑 눈을 가진 까치가 나무 위에서 부러진 가지로 집을 짓고 있었다. ‘저 집은 얼마나 따뜻할까?’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지나쳐 회사를 향해 걸었다. 두 달동안 붙잡고 있던 보고서를 마침내 완성했다. 며칠간 계속되는 한파에 기력이 떨어진 것 같아서 퇴근 후에는 가족들과 함께 돼지고기를 구워 먹었다. 별안간 오른쪽 발뒤꿈치가 욱신거렸다. 거미줄 모양으로 갈라진 피부 사이에 피가 맺혀있었다. 침대에 누워 유튜브로 쥐를 키우는 사람에 대한 영상을 보다 잠이 들었다. 긴 꼬리를 가진 두 쥐의 이름은 에드거(Edgar)와 퍼거스(Fergus). 그날 나는 상승과 하강만이 있는 하얀 세상에 대한 꿈을 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