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진화에게:
자기만의 밖
첫 번째 편지

진화에게

시리얼 한 그릇 가득 먹고 편지를 써. 망원은 잘 있니. 복닥복닥한 연구실에서 매일 볼 때는 물을 필요가 없던 안부를 묻게 되는구나. 혜화는 잘 있어. 혜화에 사는 나도 잘 있고. 

편지를 쓰고 싶은 마음과 실제로 편지를 쓰는 일 사이에는 아득함이 있나봐. 네게 하고 싶은 말이 내 안에 잔뜩 쌓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노트북을 열었는데, 열고나니 그 말들이 매우 멀게만 느껴져. 지금은 그냥 너를 부르고만 싶은 마음이다. 

진화야. 

지난겨울 끝자락, 어느 바다 근처 카페에서 함께 나눈 대화를 나는 종종 곱씹어. 우리 ‘자기만의 밖’을 만드는 일에 대해 이야기했잖아. 자기만의 방이 필요한 만큼 자기만의 밖도 필요하다고. 새로운 가족을, 친구를, 주변을 꾸리는 그런 일들이 참 어렵다고. 네가 그 고민을 꺼냈을 때 나는 계속 고개를 끄덕인 것 같아. (사실 지금도 혼자 끄덕이고 있어.) 지난 몇 년간 네 말과 생각을 탐해온 사람으로서, 그것참 탐스러운 고민이구나 생각했어. 자기만의 밖 만들기. 내게도 참 필요하고 어려운 일이야. 조만간 먼 곳으로 이사를 해야 하다 보니 네가 말한 ‘자기만의 밖’을 요즘 더 자주 생각하게 된단다.

다만 진화야, 내가 당시의 대화를 곱씹는 이유는 한 가지 미지근한 의심이 들어서야. 그때 나는 네 말을 제대로 알아듣고 끄덕인 걸까? 아니면 네가 너무 좋아서 일단 끄덕이고 내 마음대로 네 말을 끌어왔을까? 너는 너만의 밖이 필요하다고 했지. 그러면 너만의 안은 무엇이니? 어디까지가 너의 안이고, 어디부터가 너의 밖이니? 

내가 끄덕이며 생각한 나의 안은 나의 몸이야. 창밖에서 넘어오는 따가운 햇살과 시끄러운 선거운동 송. 방 안에 있으면서도 나는 밖에 있다고 느껴. 사실은 가끔 몸조차도 ‘나’의 밖에 있는 것 같아. 이를테면 생리하기 직전 몸은 나만의 안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워. 혹시 연구실에서 아랫배를 부여잡고 웅크리고 있던 나를 기억하니. 열이 나고 구토감이 심해서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하다보면 내 몸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밀려오거든. 쓰고 보니 나는 괴롭고 불편한 것이라면 다 밖에 두는구나.

내 몸조차 종종 밖인 나에게, ‘자기만의 밖’은 너무도 넓네. 이 생각을 잡고 있자니 나만의 밖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꾸려야 할지 참 막막하다. 올해 여름, 나랑 편지하며 네가 꾸리는 안과 밖에 대해 이야기해줄래? 너만큼 네 안도, 밖도 궁금해. 

나의 밖에서,
주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