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에게
짱 느린 답장을 보낸다. 늦어서 미안해.
응, 나는 혜화를 떠나 할렘에 잘 도착했어. 혜화와 할렘을 한 문장에 쓰고 나니 무척 어색하네. 비행기로도 열네 시간 이상 걸리는 두 동네를 한 데 묶어서 그런 걸까. 심리적으로도 내게 더 먼 이곳에, 내 몸이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어색하게 느껴져.
그래도 첫 편지 쓸 때와 한 가지 같은 점이 있어. 나는 지금도 시리얼을 먹고 있거든. 그때는 현미 잡곡 어쩌구였고, 지금은 럭키 참스(Lucky Charms, 행운의 부적)이지만. 럭키 참스를 먹어본 적이 있니? 나는 아주 어릴 때 한번 먹어본 것만 같아. 아닐 수도 있는데, 만약 기억이 왜곡된 것이라면 다 대중문화 탓이다. 미국발 만화 영화와 드라마를 너무 열심히 챙겨봐서 내가 직접 먹었다고 착각한 것일 수 있어.
어쨌든 낯선 나라의 커다란 마트에서 이 낯익은 시리얼을 발견했고, 반가운 마음에 사 왔어. 앞으로 소소한 행운이 따라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던 걸까. 한입 뜨니 행운은 모르겠고 웃음이 나는 맛이야. 오만 색의 마시멜로 부적들이 들어있거든. 그중 하나는 파란색 말발굽 모양이야. 속도를 높이는 힘을 준대. 앞으로 답장 빨리할게. 쓰지 못한 편지에 대한 변명과 자의식이 이렇게나 길고 크다니.
너는 몸을 ‘나만의 안’으로 가질 수 있는 내 비결이 궁금하다고 했지. 시리얼을 먹으면서 이 이야기를 하자니 조금 죄책감이 드네. 글쎄, 한 번도 ‘비결’이라고 생각해보지 못한 것이라 머뭇거리게 된다. 우선, 내 안은 이렇게 알록달록한 색소로 가득하단다. 허기지고 요란해. 어쩔 수 없이 끌고 다녀야 한다는 점에서 종종 거추장스럽고. 나는 나의 안을 선택하지 않았어. 다만 내가 매일 마주해야 하는 유일한 것이었고, 그래서 이것이 나의, 어쩔 수 없는 ‘안’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 그래서 너의 안에 리치가 있다는 사실이 나는 놀랍고 조금 질투가 나. 그를 위해 짱 빠른 기차를 타고 서울과 부산을 한 달에 몇 번씩 오가야 한대도 말이야.
나도 언젠가 너처럼 내 안에 누군가를 들일 수 있을까? 사실 첫 편지를 쓸 때 나는 리치가 네 밖을 구성하는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우리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말을 걸었던 거야. 그런데 네 편지를 읽으니 질문이 더 많아진다. 리치 말고 또 네 안에 들인 존재가 있을까? 리치는 어떻게 네 안에 들어오게 되었니? 네 안을 고스란히 가지고 새로운 밖을 구성하는 일은 많이 어려울까?
색색의 부적들이 녹고 있어서 이만 줄일게. 참고로 아침에는 현미밥에 김 해서 고추참치랑 먹었으니 내 몸을 너무 걱정하지는 말렴.
짐을 다 풀지 못한 새로운 방 안에서,
주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