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경화에게:
알면서도 우리는
첫 번째 편지

경화. 오늘 서울은 무지 춥다고 하던데 어떻게 지냈나요. 제게 건네주던 조그마한 핫팩들, 아직 많이 갖고 있어요?

할렘에 돌아오자마자 경화가 준 새 모양 모빌을 벽에 걸어 두었어요. 며칠 동안 먹고 자기만 하면서 모빌을 오래 바라보았답니다. 시차 적응을 하는 동안에요. 몇 밤 흐르고 나니 모빌을 바라보는 제 마음이 조금 잠잠해졌고, 경화 님 편지가 선명하게 떠올랐어요. 구겨지지 않도록 어느 책 사이에 끼워두고는 잠시 잊고 만 편지. 그걸 찾으려고 여행 가방을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책이 상하지 않도록 구석구석 끼워 넣은 옷들도 정리하고요. 덕분에 빨래도 돌렸답니다.

막 건조된 따끈한 옷가지를 침대 위에 늘어놓고 낮잠을 잤어요. 자다 깨서는 편지를 읽고, 또 읽다가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유학 후 처음 들른 한국은 어땠는지 물어보셨지요. 자면서도 그 질문 생각을 했나봐요. 꿈에서 저는 경화와 함께 망원 시장을 돌아다녔어요. 붕어빵 매대 앞에서 경화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다 꿈에서 깬 것 같아요. 경화, 팥을 좋아하나요 아니면 슈크림을 좋아하나요. 저는 둘 다 좋아해요. 피자맛은 경화 님 취향이 아니겠지요? 다음에 만나면 저랑 같이 붕어빵을 먹으러 가요. 붕어빵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신다면 제가 많이 먹을게요. 꼬리 부분을 먹을 때 바삭 소리가 나면, 왠지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며 조용히 웃을 것 같아요.

이번에 방문한 한국은 조금 정신이 없었어요. 아직 소화 중. 소화하지 못한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은 왜 항상 어려울까요? 그래서 그랬을까요. 뉴욕은 어때, 라는 질문에도 아직 대답하기 어렵더라고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면 자꾸만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어요. 그러다보니 오랜만에 만난 친구 하나가 저랑 수다를 떨다 웃음을 터뜨렸는데요. “야, 그게 언제 적이야. 벌써 오년도 더 된 얘기다.” 하고요. 저는 따라 웃으면서 더부룩함을 느꼈어요. 내 뱃속에 아직 소화하지 못한 시간을 생각하면서요. 가깝지만 가장 먼 시간. 돌아볼 여력이 없는 시간. 

저는 요즘 시간을 다시 상상하는 일을 배우고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그동안 ‘다 때가 있다’고 배워왔잖아요? 예를 들면, 지금은 공부할 때. 결혼할 때. 아이를 가질 때.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고들 하지만 여전히 그 때를 놓치면 영영 후회 속에 살게 될 거라는 서사가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나의 몸을 그 ‘때’에 맞출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된 이상, 이제부터는 나의 시간이 흐르는 방식을 조금 더 들여다봐야겠습니다. 올해에는 더 많은 시간을 소화하고 싶어요. 

경화, 돌아보고 싶은 시간이 있나요? 있다면 들려주시겠어요?

벌써 보고싶은, 
주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