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경화에게:
알면서도 우리는
세 번째 편지

경화,

감기는 좀 어때요? 질문이 늦어 민망하지만. 아픈 곳 없이 봄을 나고 있기를 바랄게요. 

모빌은 고요해요. 제 눈길이 늘 닿는 벽면에 걸어 놓았어요. 심심하면 한 번씩 벽의 풍경을 바꾸곤 하는데요. 그래서 새가 나는 풍경은 바다였다가, 잠든 사람의 이마였다가, 지금은 공원 스케치가 되었어요. 나무 위에는 비둘기가, 길 구석구석에는 고양이들이 앉아있는 부산한 풍경입니다. 

경화의 답장을 오래 읽었어요. 휴대폰 화면으로 읽다가 곧 인쇄를 해서 새가 나는 풍경 옆에 나란히 붙여두었습니다. 이어 쓰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보내주신 밤과 바깥을 잘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이 앞섰어요. 답장이 늦어 하는 변명처럼 들리지만요. 제게도 어린 경화의 밤과 같은 순간이 있었을까요.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가끔은 긴 호흡으로 경화의 답장을 천천히 읽고, 가끔은 흘긋 단어 사이 공백을 쳐다보면서 생각했어요. 어떤 명징함일까요. 그 밤이 그토록 경화에게 여러번 보여주는 밝음은요. 

그 밝음은 제가 기다리는 시간과 닮은 것 같아요. 저는 아직 그 시간이 제게 다가오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생각이 들면 슬플 때도 있고 두근거릴 때도 있어요.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들면 주로 누워요. 가만히 천장을 올려다보다가 어둠 속에서 희끗거리는 사물들을 보다가 잠에 듭니다. 일어나면 반갑게도 바로 배가 고파요. 슬픔이나 두근거림은 사라졌고, 곧 저는 가방을 메고 부리나케 지하철을 타러 뛰어가겠지요. 

며칠 전 부분일식을 보았어요. 칠 년 만이라고 해요. 뉴욕에서 일식이 관측된 것이요. 저는 참 멋없게도 이런 일에 관심이 없습니다. 함께 사는 T가 아니었다면 아마 그날 옥상에 올라가지 않았을 거예요. T는 몹시 바쁜 박사 막학기생인데요. 우리는 각자의 방이 각자의 화분인 양 산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특히 학기 중이면 간단한 인사 외에 별다른 말을 주고받지 않아요. 그런 T가 그날은 같이 일식을 보러 가지 않겠냐고 제게 문자를 했어요. 찰스 디킨스를 읽고 있던 저는 조금 고민하다 알겠다고 답장을 했고요. 옆방이 잠시 소란하더니 T가 택배 상자 두 개를 들고나왔습니다. 빛이 잘 들어오는 공간에서 햇빛을 담듯 상자를 살짝 기울이면 박스 구멍에 통과된 빛을 볼 수 있대요. 점점 어두워지는 빛을 통해 부분 일식을 관찰할 수 있고요.   

택배 상자를 옆구리에 하나씩 끼고 함께 옥상에 올라갔어요. 태양 관측용 안경을 미리 준비한 사람들이 태양을 바로 보고 있었어요. 우리는 태양을 등지고 상자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손톱만큼 작은 빛이 보였고, 우리는 그 손톱이 아주 짧아질 때까지 말없이 서있었어요. 며칠째 그 상자 안 풍경을 종종 떠올리고 있어서 적어봅니다. 내 손이 흔들리면 영락없이 함께 흔들리던 풍경을요.  

경화-. 경화야말로 길게 부르기 좋은 이름인걸요. 이름 마지막 자에 히읗이 있어서인지 하염없이 길게 부를 수 있어요. 경화. 우리가 멀리서 가끔 서로를 떠올릴 수 있다면 좋겠어요. 각자 앞에 차 한 잔을 두고요. 올해 내내 편지 해요, 우리. 경화의 그 밤에 대해서도, 그 밤 바깥들에 대해서도 더 듣고 싶어요. 

경화를 몹시 사랑하는, 
주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