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화에게,
천둥번개. 저도 좋아해요. 올해도 몇 번 만났는데요. 가장 최근의 천둥번개는 진짜였는지 잘 모르겠어요.
몇 주전 잠깐 뉴욕을 떠나 필라델피아에 머문 날이었어요.필라델피아 시골집은 열여섯 살 강아지 체스터의 오줌 냄새로 시큰했습니다. 체스터는 더 이상 허리 아래를 움직이지도, 반갑다고 짖지도 못하지만 제가 도착했을 때 눈을 아주 크게 뜨고 저를 반겨주었어요. 흰자가 보이도록요! 필라델피아로 가는 기차에서 내내 경화의 편지를 붙들고 있었기 때문일까요. 소중한 흰자. 경화님 친구분의 다소 생뚱맞은 대답은 어쩌면 정답일지도요. 저도 경화님이 얼굴에 힘주는 거 보고 싶어요.
그날 밤 제가 들은 소리가 천둥이었을까요. 체스터를 꼭 껴안은 뒤에 시골집 침대에 오래도록 누워있었어요. 작은 방안의 커다란 창문에는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고요.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필라델피아 시골집에 오기 직전까지 한 일을 돌아보았습니다.
세상을 떠난 친구의 집 정리를 도왔거든요. 반납하지 못한 도서관 책들. 거의 새 것인 밥솥. 금세 텅텅 빈 친구 집을 텅텅 나와 지친 상태에서 잡아탄 택시에서 흘려본 풍경 생각도 하고요. 그러다 우르릉 소리를 들었어요. 소리를 듣자마자 벌떡 일어나 창문으로 달려갔지만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빛이라고는 시골집에서 가장 가까운 기차역 불빛. 기차 하나가 오래된 역을 통과하고 있었습니다. 기차 소리였을까요. 천둥이 아니라요.
지금 이 편지는 뉴욕 제 기숙사 방에서 쓰고 있답니다. 여전히 잠은 잘 오지 않네요. 저와 함께 살았던 룸메이트 둘이 모두 어제 이사 나갔기 때문일까요. 어제 하늘은 흐렸지만 비는 오지 않았어요. 다행이지요. 올지 않으려고 했는데 한 세 번 정도 운 건 어쩔 수 없었고요. 연이어 작별 인사를 마친 후에는 아수라장이 된 부엌 겸 거실 소파에 오도카니 앉아있다가 피자를 시켜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 입맛 다른 셋이 살면서 늘 터질 것 같았던 냉장고는 이제 남은 피자를 용기에 다시 담지 않고 상자째 넣어도 자리가 널널합니다. 그동안 저는 늘 늦게 도착하고 먼저 떠나는 사람이었나 봐요. 이 널널함이 무척 어색하네요.
경화는 청소를 좋아하나요? 저는 청소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가끔 그 일이 무척 하고 싶어질 때가 있어요. 요즘이 그렇고요. 생각해 보면 올여름 제게는 청소운이 있나 봐요. 먼저 떠난 친구의 서랍을 한 칸씩 정리할 수 있어서, 체스터의 배변 패드를 갈아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청소는 가끔 기도같아요. 쓸고, 닦고, 매만지면서 그 자리에 분명 사랑이 존재했고,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감각할 수 있어서요. 그런 의미에서 새 룸메이트가 오기 전에 냉장고 청소는 꼭 한 번 해야겠어요요.
마지막으로, 경화가 준 새 모빌이 잠시 제 방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거실 벽에 걸어두었어요. 엊그제까지 그 벽면에는 도시의 밤 풍경이 걸려있었는데요, 룸메이트와 함께 풍경도 이곳을 떠났거든요. 새 풍경을 찾을 때까지 모빌을 여기 두려고 해요.
보고 싶다는 얘기를 이렇게 길게 해봅니다.
점심 꼭 먹어요, 경화. 아니면 저녁이라도.
고마운,
주리 올림.